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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 - 신하가 임금의 권위를 빌어 다른 뭇 사람들을 위협함을 이룸.

전국 시대의 이야기며 어느 날 초의 선왕이 문무 배고간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물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은 우리 재상 소해휼을 무서워하고 있는가?"

이에 강을이란 신하가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소해휼은 일개 재상에 불과한데 어찌 북방국들이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다른 짐승을 보면 당장

잡아먹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때 여우가 말하기를

'천제는 나를 백수의 어른으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만일 나를 잡아 먹으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다.

만일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잠깐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것이다.

그걸 보면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에 호랑이는 '좋다' 며 따라 나섰지요.

이리하여 여우가 앞장 서고 호랑이는 그 뒤를 슬슬

따라갔습니다. 마침 한 마리의 짐승을 만났습니다.

그 놈은 혼비 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짐승이란 짐승은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를 본 호랑이는 아하 과연 여우의 말대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여우 뒤에 따라오는

호랑이를 보고 짐승들이 도망친 것인데... 말씀입니다.

북쪽 나라들이 무엇 때문에 소해휼을 무서워하겠습니까,

그것은 배후의 초 곧 우리 주군의 강병 때문인 것입니다."

<전국책>

 

 

호연지기 - 천지간에 충일하여 있는 바른 원기.

곧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이름.

맹자가 제에서 제자 공손축과 나눈 대화다.

"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시어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 하실 것입니다."

"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맹자는 그것을 용이라 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이것이 대용이라 말하였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말을 알고 있다. 거기에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있다."

맹자의 대답 중에서 지언이란 피사(편협한 말), 음사(음탕한 말),

사사(간사한 말), 둔사(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를 말하며, 기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어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이다.

기는 의와 도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맹자> <공손축편>

 

 

호접지몽 -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을 꾸다 깨어보니 장자가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곧 만물 제일이요,

사물은 절대적 경지에서 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전국시대의 철학자인 장자의 사상은 매우 심오한데,

그중의 하나로 만물 제동 사상이 있다.

우리는 대소, 미추, 선악, 시비 등의 대립되는

가치 관념이 있어서 그 하나를 좋다,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장자는 그것은 우리가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일 뿐 실제에 있어서는 무차별임을 주장한다.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다음날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다음날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기는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꿈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나 깨어서야 그것이 꿈이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꿈이 현실 아니고, 현실이 꿈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였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임을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어 있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된 꿈을 꾸었던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도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

<장자> <제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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